무협/SF

천상(天上)의 향기 - 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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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레드썬 조회 748회 작성일 2019-06-10 10:27:4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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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天上)의 향기 6(아군과 수혜의 만남)-3




세월이 흘려 수혜와 아군의 나이도 어느덧 14살이 되었다. 수혜는 금아산에서의 일 이후에 무공에 눈을 돌려 아버지와 세가의 무술교관들에게 무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벽궁세가의 무술은 검이나 도 등 무기를 사용하는 무술보다는 권(拳), 장(掌), 지(指)등을 사용하는 적수공권을 위주로 한다. 수혜는 가전무공을 수련하면 아군도 함께 수련하기 원했지만 아무리 수혜와 아군이 절친한 사이라고 하더라도 아군과 함께 가전무공을 수련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아군은 누가 뭐라고 해도 종의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군이 꼭 가전무공을 수련하겠다고 하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군이 종의 신분을 벗어나 무사로 거듭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세가의 규칙에 따라 아군은 무사들과 함께 생활해야 함으로 더 이상 아가씨를 모실 수 없게 된다. 이건 수혜도 바라지 않았고 아군도 더더욱 바라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아군은 세가의 무공을 익히지 못했고 수혜만이 무공을 익히게 되었다. 2년이란 기간동안 수혜의 무공은 일취월장했다. 수혜는 무공을 익히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2년이란 짧은 기간동안 집안에서 전해 오는 모든 가전무공을 익히게 되었고 나중에는 아버지나 교두들에게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게 되었다. 




14살의 수혜는 꿈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았다. 꿈 많은 소녀인 그녀는 집안에만 갇혀 있다는 것이 답답하고 갑갑하게 느껴져 아군과 함께 외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날도 아가씨는 멋진 무복을 입고 활을 준비하고는 아군을 찾았다.




“아군 우리 사냥 나가자.”


“또요. 얼마 전에도 다녀오시지 않았습니까?”


“따분해 죽겠어. 어머니는 나보고 바느질이나 배우라고 하는데 내가 그런 것을 할줄 알아. 또 아버지나 교두아저씨에게는 더 이상 배울 것도 없어서 답답해 죽겠어.”


“그럼 책을 읽으세요.”


“이제 읽을만한 책도 없어. 집안에 있는 책이란 책은 모두 읽었단 말이야.”


“꼭 가셔야 해요. 그럼 가모님께 허락받고 오세요. 또 저만 혼나게 하지 마시고.........”


“정말.........아군 같이 가는 거지. 잠시만 기다려.”




수혜는 신발을 신고는 안채로 달려갔다. 아군은 피식 웃는다. 이제 아가씨의 나이도 14살이다. 아직 나이가 어려 솜털도 가시지 않았지만 아가씨는 참으로 아름답게 성장했다. 벌써부터 이곳 용안일대에서는 아가씨의 미모에 대해 소문이 자자할 정도였다. 아군은 마구간으로 가서 아가씨의 말을 끌고 왔다. 아가씨가 고집을 부리는 이상 가모님도 허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군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군이 말안장을 소질하고 있는데 아가씨가 달려왔다.




“준비 끝났어. 어머니가 허락하셨어. 자~ 우리 출발하자.”




아군은 말고삐를 잡고 세가를 나섰다. 아군이 아가씨를 모시고 세가를 벗어나자 마음사람들이 아가씨와 아군의 모습을 보고 소곤거리며 길을 비켜준다.




“아군. 우리 객점에서 식사가자.”


“아직 식사시간 안됐잖아요.”


“사냥터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잖아. 일단 배를 채우고 혹시 모르니까 건량(마른 음식, 비상식량)이라도 챙겨서 가도록 하자. 저번처럼 또 시간이 늦어지면 큰일이잖아.”




얼마 전에 아가씨와 사냥을 갔다가 아가씨가 멧돼지를 잡아야 한다고 고집을 부려 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산에서 늦은 시간까지 돌아오지 못한 적이 있다. 그때 아가씨와 아군은 멧돼지도 잡지 못하고 굶주림에 허덕이며 세가로 돌아온 기억이 있다. 아가씨는 그때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아군은 말을 점소이에게 맡기고 아가씨와 함께 객점으로 들어갔다. 객점 안에는 아직 식사시간 전이라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다. 수혜와 아군은 점소이의 안내를 받아 객점의 창가에 앉았다.




“헤헤. 아가씨 주문하시겠습니다.”


“간단하게 오리고기 한 마리하고 만두 한 접시........그리고 건량 좀 준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술은 주문안하세요.”


“술?...........아직은.........그냥 음식이나 주세요.”




수혜와 아군이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일단의 무림인들이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곳은 중원무림과 떨어진 변방이라 무림인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수혜는 신기한 광경을 본 듯이 검을 차고 배회하는 무림인들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군. 저 사람들 말이야. 정말 무림인들인 모양이다.”


“무림인이요. 그거 뭐예요.”


“아군은 그것도 몰라. 이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세상이 있어. 무림(武林)이라고 하는 곳인데 그곳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무림인이라고 해. 사실 우리 벽궁세가도 무림세가의 하나야. 사실 뭐~ 무림에서 직함도 내밀지 못하는 세가(世家)지만 말이야.”


“그래요. 그런 세상이 있어요. 그 사람들은 우리하고 뭐가 틀려요.”


“바보. 들어 봐. 무림이란 곳은 말이야 수많은 기인이사(奇人異士)들이 즐비하고 자신의 명예와 사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검 하나에 의지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을 활약하는 곳이야. 무공을 익힌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곳은 꿈과 낭만이 있는 곳이야. 수많은 협사들도 만날 수 있고 무림인들이 야망을 펼칠 수 있는 곳이야...........수혜는 상상해 해도 가슴이 뛰는데 아군은 아무렇지도 않아.”




아군은 아가씨의 말을 듣고도 별반 반응이 없었다. 애초에 아군에게 무림이란 세상은 자신과는 하등 상관없는 세상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이란 존재는 그저 아가씨를 보살피고 그녀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놈이다. 그의 가슴속에서 꿈이나 야망이란 단어를 찾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아가씨가 신나는 표정으로 하도 열심히 떠들고 있으니 빙긋 웃기만 한다.




“아군 우리 크면 꼭 무림이라는 곳으로 나가자. 어때 좋지.”


“글쎄요. 무림이란 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겠지만 아가씨가 가시겠다고 하면 제도 따라가야죠. 다만 저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려고 해요. 아가씨만 바라보고 있어도 행복한 놈이 접니다.”


“피~~~”




아군의 솔직한 말에 수혜는 얼굴을 붉히지만 곧 코끝을 찡긋거리며 다시 창가로 눈을 돌렸다. 그녀에게 아군이란 존재는 어떤 의미일까? 그냥 자신을 모시는 하인인가? 그건 아니다. 수혜에게 아군이란 존재는 하인이상의 의미로 인식한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자신이 겉에 두며 정을 주고 있지만 아군에게는 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겉을 지켜주는 그림자 같은 사람이다. 그때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다. 




“아가씨 음식 나왔어요. 빨리 식사하세요.”


“응~ 음식이 나왔어. 알았어. 아군부터 먼저 먹고 있어.”




수혜는 음식이 나와도 길가를 배회하는 무림인들을 지켜보는데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 아군은 한숨을 쉬고는 점소이를 불러 빈 접시를 달라고 했다. 점소이가 접시를 가져다주자 아군은 오리고기를 잡아 뼈와 살을 발라 살코기는 그녀의 접시에 가지련하게 놓아주고 자신은 뼈에 붙은 고기만 발라먹었다.




“아가씨.........이제 그만 식사하세요.”


“알았어. 조그만.........조그만 더 보고.”




수혜는 아군의 말에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창가만 바라본다. 아군도 이제 말하기도 지쳤는지 그녀가 질릴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시간은 자꾸만 흘려가고 모락모락 김이 나며 향긋한 냄새를 풍기던 오리고기도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 아군은 무료한 시간을 달려기 위해 객점 안을 둘려보았다. 객점은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객점에는 사람들이 얼마 없어 한산해 보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앉아있는 옆 탁자에 한 노인이 안주도 없이 술병을 통째로 들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머리는 산발을 해서 얼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고 가슴까지 내려온 턱수염도 더러운 찌꺼기가 묻어 지저분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옷차림은 더욱 가관이다. 분명 처음에는 승복이었을 것 같은데 여기저기 찢어진 곳을 각기 다른 색깔의 천으로 덧대고 기워 입어서 그 색깔이 유치찬란한 뿐만 아니라 이제는 승복이지 뭐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옷처럼 보였다. 그나마 옷이라도 깨끗하면 그런대로 봐줄 만하겠지만 한 몇 년은 빨지도 않았는지 지저분하기 짝이 없어 거지도 이런 상거지는 없을 정도였다. 아군은 노인을 발견하고 코끝에 전해오는 심한 악취를 느낀다. 아군이 손으로 코를 막으며 고개를 돌리려고 하는데 노인이 고개를 들며 서로의 눈빛이 마주쳤다. 아군은 잠깐사이 눈에 강렬한 통증을 느꼈고 심장이 멈추는 것같은 강한 충격을 받았다. 노인의 눈빛이 마치 칼날처럼 자신의 눈을 강력하게 자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도 잠시 아군은 노인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노인의 눈빛을 노려보았다. 노인은 아군이 자신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내자 의아한 시선으로 아군을 한참을 노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아군이 앉아 있는 탁자로 다가왔다. 아군은 노인이 다가옴에 따라 점점 심해지는 악취에 손으로 코를 막으려하는데 아군이 앉아 있는 탁자로 다가온 노인은 아무런 말도 없이 더러운 손을 내밀어 아군이 힘들게 발라놓은 오리고개를 잡으려 했다. 오리고기는 아군을 아가씨를 위해 발라놓은 것이다. 아군의 손은 접시로 다가오는 노인의 팔목을 잡았다. 




“이런 빌어먹을 자식. 음식이 아까운줄 모르는 놈들이구나. 오리고기는 식으면 기름기 때문에 느끼해서 먹기가 거북한 음식이다. 네놈의 탁자에 있는 고기는 이미 식을 만큼 식어서 먹지 못한단 말이다.”


“그건 노인이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말귀가 꽉 막힌 놈이네. 이왕 버릴 음식이면 나한테 달란 말이야.”




노인은 짜증이 나는지 아군에게 잡힌 손을 교묘하게 뒤집어 아군의 맥문(脈門)을 잡고는 진기를 주입했다. 이정도면 평범한 놈이라면 악소리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찌 된 건지 아군의 맥문에 진기를 주입해도 아군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도리어 다른 팔을 내밀어 노인의 어깨를 공격해 왔다. 노인은 아군의 손을 놓고 어깨를 비틀어 아군의 주먹을 피했다. 




“아군 무슨 일이야.”




그때 창가를 바라보던 수혜도 탁자에서 벌어지는 소란에 고개를 돌려다. 아군은 노인이 자신의 주먹을 너무나도 쉬게 피해버리자 씩씩거리고 있었다.




“이 영감님이 아가씨가 드실 음식을 훔쳐 먹으려 했어요.”


“이런 빌어먹을 자식, 누굴 도둑놈을 만들어. 어차피 내버릴 음식 내가 먹겠다는 것이 잘못이냐. 젊은 것들이 배가 불러가지고 음식 아까운줄 모르고 말이야.”




노인은 누런 이를 드러내고 침까지 튀기며 아군에게 악을 쓴다. 수혜는 자신의 앞에 놓인 음식과 두 사람을 살펴보더니 이내 자신의 접시를 들어 노인에게 내밀었다. 




“드세요. 대신 좀 비켜주시겠어요.”




수혜도 노인의 몸에서 풍겨오는 악취에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귀하게만 자란 수혜는 오리고기가 이미 식어버렸고 보지는 않았지만 더러운 노인의 손이 고기를 만진 것 같아 식욕이 떨어져 노인에게 고기를 내민 것이다.




“헤헤. 그래도 예쁜 꼬마아가씨는 말귀를 알아듣는군. 그래 어차피 버릴 음식이잖아.”


“아가씨.........음식을 주시면 안돼요. 아가씨도 아직 안 드셨잖아요.”


“괜찮아. 식욕도 없어. 그냥 적선하는 셈 치자.”




아군과 수혜가 대화하는 사이에 노인은 수혜에게 받은 음식을 ‘개 눈 감추듯’ 먹어치우더니 접시를 혓바닥으로 핥아먹고 있었다. 




“아군 일어나자. 너무 시간을 지체했어.”




수혜는 하시라도 빨리 이 악취 나는 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녀가 앞장서서 나가자 아군도 아가씨를 따라가며 노인을 힐긋 쳐다보고는 아가씨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아군과 수혜가 밖으로 나가자 노인은 핥아먹던 접시를 내려두고 아군과 수혜가 살아진 곳을 한참을 주시했다.




“참~ 알 수 없는 놈이군.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놈인데 내 서선을 정면으로 받아내고 맥문을 잡히고도 통증을 호소하기는커녕 반격을 한단 말이지.”




그때 객점으로 몇 명의 무사들이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이크~ 저놈들이 이곳까지 쫒아왔구나.”




노인은 무사들을 보자마자 창으로 몸을 날려 밖으로 빠져나갔다. 노인은 몸은 곧 연기처럼 살아져 버리고 객점으로 들어온 무사들은 객점 안을 두리번거리다가 한쪽 탁자에 주저앉았다.




“참~ 우리가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문주님도 너무 하시지 말이야. 아니 바람처럼 무림을 주류하시는 태상장로님을 무슨 재주로 찾아오라는 말씀인지.........”


“나도 답답하네. 우내십기(宇內十奇) 중에서 가장 괴팍하기로 소문난 분이 태상장로님이야. 우리 제자들 중에서 태상장로님을 한번이라도 직접 본 사람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야. 그런 우리들 보고 어떻게 그분을 찾을 라는 말이야.........휴~ 정말 한숨만 나오네.”


“참~! 하여튼 찾아보기나 하세. 얼마 전에 이곳 요동에서 그분을 보았다는 정보가 있으니 찾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문주님의 지엄한 명을 거역할 수는 없지.”


“쩝~ 이왕 들어왔으니 배 좀 채우고 가세. 이거 화산에서 이곳까지 쉬지 않고 달려오느라 제대로 식사다운 식사도도 뭐하지 않았나.”


“그럼 다른 친구들도 부르도록 하지.”




아군은 아가씨를 모시고 금아산으로 가고 있었다. 아가씨는 배가 고픈지 점소이에게 받은 건량을 씹고 있었다. 아군은 아가씨의 모습을 보고 속이 상했다. 자신이 힘들게 발라놓은 고기는 거지같은 노인에게 주고 아가씨는 딱딱하고 맛도 없는 건량을 씹고 있으니 속이 상할 만도 하다.




“아가씨 배고프세요.”


“아니야. 그냥 입이 심심해서 먹고 있어. 음.......다 왔네. 우리 숲속으로 들어가 볼까?”


“오늘은 뭘 잡고 싶으세요. 제가 몰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야. 오늘은 그냥 답답해서 나왔어. 천천히 돌아보다가 사냥감이 나타나면 그때 사냥하자.”


“알겠습니다.”




아군은 금아산에 도착해서 아가씨의 요청에 따라 험한 곳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말이 통행할 수 있는 길만 따라 산을 올랐다. 수혜는 답답한 집안을 벗어나 밖으로 나오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그녀는 흥겨운 노래를 흥얼거리며 활에 화살을 메였다. 당장이라도 동물이 튀어나오면 화살이 날아갈 것이다. 그때 길가에 있던 수풀이 들썩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화살은 수풀을 향해 날아갔고, 아군은 화살이 날아간 곳에 가보니 토끼 한 마리가 화살에 꽂혀 있었다. 아무래도 재수 없는 토끼인 모양이다. 아군은 화살을 뽑아내서 아가씨에게 전해주었다. 수혜가 다시 화살을 활에 걸었는데 이번에도 수풀이 들썩거린다. 역시나 수혜의 화살이 날아가고 아군이 다시 가보니 이번에도 토끼 한 마리가 화살에 꽂혀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사람의 왕래가 잦은 이곳에 토끼들이 접근할 리가 없는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토끼들이 이곳에 출몰하는 것이다. 아군은 다시 화살을 뽑아내서 아가씨에게 전해주고는 토끼들은 안장에 매달았다.




“오늘은 운이 좋네. 벌써 두 마리나 잡았어. 자~ 다른 곳으로 가볼까.........어~ 저기 연기가 피어오르네. 무슨 일이지............아군 우리 한번 가보자.”




아군은 아가씨가 가르치는 곳으로 말을 끌고 갔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은 수혜가 토끼를 사냥한 곳과 멀지는 않았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곳은 어른의 키만큼 자란 갈대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들판이었다. 이런 곳으로 말을 끌고 들어간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갈대 숲 안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말 재수 없으면 갈대밭 속에 늪이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때 멀리 갈대밭이 들썩거리는 것이 보였다. 수혜의 화살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다.




“휘이........익~”


“아이고 나 죽는다...........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나.......어떤 죽인 놈들이야.”




갑자기 갈대들이 넘어지며 한 사람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 사람은 갈대밭을 구르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었다. 아군이 힐긋 보니 그의 엉덩이에는 수혜가 날린 화살이 박혀 있었다. 아군은 큰일이다 싶어 갈대밭으로 달려가 보니 길길이 날뛰고 있는 사람은 바로 객점에서 보았던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그 노인이었다. 노인은 엉덩이에 박힌 화살을 자기 손으로 뽑더니 화살을 동강내 버린다.




“또 네놈들이냐. 이놈의 새끼들. 확인도 안하고 화살을 날려. 어떻게 할 거야. 배상해. 하이고 엉덩이야. 아이고~ 나 죽는다. 이놈들이 사람 잡는다.”




노인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다시 갈대밭을 뒹굴기 시작했다. 아군이 보기에 노인은 별다른 상처도 없는 것 같은데 노인네가 이걸 빌미로 한몫 잡으려는 심산처럼 보였다. 아군은 쓰게 웃더니 그냥 노인을 두고 갈대밭을 빠져나오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바닥을 구르고 있던 노인이 아군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진다.




“이놈아 그냥 가면 어떻게........아이고~ 죽게네. 난 죽는다.”


“이보세요. 할아버지. 그만 일어나세요. 얼마 다치지도 않을 것 같은데.......약값을 드리겠습니다.


“이놈이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별로 안 다쳐. 안되겠다. 직접 화살을 날린 저년에게 직접 따져야겠다.”




노인은 아군과는 할말이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수혜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수혜는 자신이 날린 화살에 노인이 다쳤기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네가 화살을 날렸지. 어떻게 책임질 거야. 나 죽을 것 같다. 혹시 화살에 독이라도 묻힌 거 아냐.”


“무.........무슨 말씀이세요. 도.........독이라뇨. 아닙니다.”


“그런데 왜 엉덩이가 쿡쿡 찌르면서 머리가 어질어질하지. 아~ 죽겠다.”


“억지 부리지 마세요. 아가씨! 영감님이 억지 쓰는 겁니다.”


“이런 쳐 죽은 놈. 가만........이 도끼들은 내가 쫒던 토끼잖아. 이것들이 내 토끼들을 잡아왔네.”




노인은 말에 매달린 토끼들을 보고는 입에 거품을 물고 길길이 날뛴다. 아군은 기가 막혔다. 아니 산에 사는 토끼를 보고 자신의 토끼라니 말이 안 되지 않는가?




“보자보자 하니까 너무 하시네.........아니 이게 왜 영감님 토끼란 말입니까?”


“이놈아! 이 토끼들은 내가 침 발라놓은 토끼들이야. 내가 이놈들을 잡으려고 토끼 굴에 연기 피우는 거 안 보여. 이놈들은 내가 불을 피우자 다른 구멍으로 도망친 거란 말이야.”




아군은 갈대밭을 살펴보다가 노인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토끼들은 보통 자신이 숨어있는 굴에 몇 개의 구멍을 만들어두는 습성이 있다. 아마도 영감님이 토끼를 쫒다가 굴속으로 도망간 토끼를 불려내기 위해 굴에 연기를 불어넣으니 토끼들이 다른 구멍으로 도망치다가 아가씨가 날린 화살에 잡힌 모양이다. 어찌 사람들이 왕래하는 곳에 토끼들이 출몰한다고 아군도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설사 일이 그렇게 되었다고 해도 산에 사는 짐승이 어찌 자신의 것이란 말인가?




“산에 사는 짐승이야 먼저 잡는 놈이 임자지 어떻게 영감님 것이란 말씀입니까?”


“이놈아. 내가 굴에 연기를 피우지 않았으면 토끼들이 그쪽으로 도망치도 않았어. 하여튼 약값하고 토끼 값을 물어줘야겠다.”


“이런 억지가............”


“아군 그만해. 죄송해요. 치료비는 섭섭지 않게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토끼들도 할아버지가 가져가세요. 그럼 됐죠.”


“험험~ 역시 버르장머리 없는 사내놈보다는 예쁜 아가씨가 났군. 그래 얼마나 줄 건데.”




수혜는 품속을 뒤져보더니 은자 한 냥을 꺼냈다. 이정도면 약값을 하고는 남을 것이다. 노인은 수혜의 손에서 은자를 잽싸게 빼앗더니 말에 매어있던 토끼를 빼내 아군에게 던졌다.




“뭡니까?”


“힘이 없어서 못가겠다. 네가 토끼를 요리해 줘야겠어.”


“이런...........영감님 너무하시네요.”


“아군. 그냥 해드려. 나도 좀 쉬고 싶어.”




아가씨의 말에 아군을 씩씩거리다가 할 수 없다는 듯이 아가씨를 말에서 내려드리고 자신은 나뭇가지를 구하기 위해 산으로 올라갔다. 노인은 아군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한쪽에 조용히 앉아있는 수혜에게 다가왔다.




“아이야. 넌 저 아이와는 어떤 사이냐.”




수혜는 근엄하고 위엄이 서린 노인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고 노인을 보았다. 노인에게 지금까지의 장난스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태산 같은 기도를 풍기고 있었다. 수혜는 노인을 바라보다가 숨이 막혔다. 노인에게 풍기는 기도가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이다.




“그........그냥 집에 있는 하인.........아니 친구에요.”


“친구라고...........녀석의 태도를 보면 그건 아닌 것 같던데.........저놈이 하인 아니냐.”


“예? 아..........신분상 하인이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아군은 저와 친구에요.”


“하하하~ 친구라........친구란 말이지. 넌 참 좋은 친구를 가지고 있구나.............내가 저놈을 만난 것도 인연인 모양이구나.”




노인의 마지막 말은 혼자서 중얼거리는 말이었다. 그때 멀리서 아군이 나뭇가지를 들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노인은 다시 장난스러운 얼굴로 변하더니 길바닥에 누워버린다. 아군은 노인의 모습을 보더니 눈살을 찌푸리고는 불을 피워 토끼를 굽기 시작했다. 수혜는 노인과 아군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한숨을 쉬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수혜가 보기에 노인은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아군이 오자 다시금 평범한 노인이 되어버린다. 토끼가 노릇노릇 익으며 향긋한 냄새가 펴진다. 아군은 말에서 소금을 꺼내왔다. 가끔 사냥을 나와 사냥한 짐승을 구워먹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소금을 준비해온 것이다. 아군이 소금을 뿌리자마자 죽은 듯이 누워있던 노인이 벌떡 일어나 토끼를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아군은 쓰게 웃으며 노인의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노인은 다른 사람에게 먹어보란 소리도 하지 않고 자기혼자 두 마리 토끼를 먹어치우고는 입맛을 다시더니 손가락에 뭍은 기름기까지 쪽쪽 빨아먹는다. 




“다 먹었으면 그만 가세요.”




아군이 차갑게 한마디 하자 노인은 걸게 트림을 한다.




“맛없는 고기를 억지로 먹었네. 그리고 웬 소금은 그리 많이 뿌렸냐. 고기가 짜서 그런지 목이 마르다. 물 좀 떠와라.”


“뭐요. 제가 영감님 종입니까?”


“아군! 그냥 떠다 드려.”




아가씨가 말하자 아군은 거역하지 못하고 툴툴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서 말안장에 매어진 가죽주머니를 들고 다시 야산으로 올라갔다.




“허허~ 그놈 성질한번 고약하군. 그래도 너의 말이라면 모두 들어주는구나.”


“저기........할아버지는 누구시죠. 제가 보기에 평범한 분 같지 않은데..........”


“나.......그냥 걸레상인이라고 불러라. 뭐~ 어떤 놈들은 나를 태화상인(太華常人)이라고도 부르는데 친구 놈들이 걸레상인이라고 부르니 너도 그냥 걸레상인이라고 부르면 된다.”


“걸레상인이요...........알겠습니다.”


“내가 저놈에게 무공을 전하겠다고 하면 저놈이 받아들일까? 네 생각은 어떠냐.”


“예~ 무.........무공이요. 어떤 무공을 말씀하시는 거죠.”


“하하하~ 너도 무공을 익히고 있겠지.”


“가전무공을 조금 익히고 있습니다.”


“이 근처에 벽궁세가라고 있지. 아마 네가 벽궁경의 자식인 모양이구나.”


“아니 어떻게 상인께서 그걸 아십니까?”


“이놈아 나도 귀가 있다. 객점에서 점소이들이 수군거리는 소릴 들었지. 그런데 넌 아직 내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음.........그건 힘들 겁니다. 아군은 글을 모릅니다. 제가 글을 가르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모두 허사로 끝났습니다.”


“뭐.........글을 몰라. 허허~ 참~ 알면 알수록 모를 놈이네. 글을 모른다. 참~ 이걸 뭐로 설명해야지. 대가리에 서광이 비치는 놈이 글을 모른다.”


“서........서광이요. 무슨 말씀이죠.”


“넌 설명해 줘도 몰라. 나처럼 도(道)를 닦은 미친놈들만 볼 수 있는 거야. 하여튼 이것도 인연이겠지”




노인은 품에서 작은 책자를 꺼내 수혜에게 내밀었다. 책자는 제목도 없고 때가 꼬질꼬질하게 끼어 있었다.




“이건 내가 먹은 고기 값이다. 놈에게 전해주던 내가 갔던 마음대로 해라..........뭐야. 이런 빌어먹을..........이곳까지 놈들이 쫒아왔네. 아이야. 나 이만 가봐야겠다.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나자구나.”




노인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더니 휘적휘적 걸어갔다. 그런데 노인의 모습은 삽시간에 수혜의 시야에서 바람처럼 살아져버린다. 수혜는 노인이 살아진 방향을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잠시 후에 일단의 무사들이 달려왔다. 




“아이야. 혹시 지저분한 옷을 입은 노인 한분을 보지 못했느냐.”


“저기.......저쪽으로 가셨어요.”


“정말이냐. 가신지 얼마나 되었느냐.”


“방금 떠나셨어요.”


“고맙다. 추적해. 오늘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장로님을 잡아야 한다.”




무사들은 경공을 발휘하여 노인이 살아진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들의 모습도 곧 수혜의 시야에서 살라졌다. 수혜는 꼭 귀신한테 홀린 느낌이었다. 그때 멀리서 아군이 가죽주머니에 물을 담아가지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군은 수혜에게 다가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영감님은 어디 가셨죠.”


“갔어. 자~ 이거 받아.”




수혜는 걸레상인에게 받은 책자를 아군에게 내밀었다. 아군은 수혜의 손에서 책을 받아 살펴보더니 다시 수혜에게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저는 봐도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수혜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군에게 책을 받아 자신을 살펴보았다. 그곳에는 한 가지 내공심법(內功心法)과 검법에 적혀 있었다. 바로 화산파의 절기인 자하심법을 걸레상인이 자기 나름대로 재해석한 심법과 화산파 정통의 매화검법이 적힌 무공비급이었다. 수혜는 자하심공과 매화검법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자하심법은 화산파에서도 오직 장문인에게만 전해지는 독문무공이다. 그런데 이렇게 귀한 것을 토끼 두 마리 값으로 지불하고 가는 저 노인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아군..........이건 대 화산파의 자하심법과 매화검법이라는 무공절기야. 이걸 익히게 되면 무림고수가 될 수 있어.”


“그래요. 그럼 아가씨가 익히면 되겠네요.”


“아니야. 이건 그분이 아군에게 전해준 거야. 난 받을 수 없어.”


“그렇게 귀한 것이라면 당연히 아가씨가 받아야죠. 저가 가자고 있어봐야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음...........알았어. 그럼 일단은 내가 가지고 있을게.”




수혜는 아군이 글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글을 해석해서 익히고 난 다음 아군에게 전해줄 요량으로 걸레상인이 준책을 자신이 챙겼다. 아군과 수혜도 날이 어두워지자 세가로 돌아왔다. 




수혜는 그날 이후 걸레상인이 전해준 무공비급을 연구하여 자하심공과 화산검법을 익히게 되었다. 물론 이건 아군과 수혜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수혜는 자하심공과 화산검법을 아군에게도 전해주려 했기 때문에 부모님께도 비밀로 했다. 하지만 세상의 일이란 모두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아군의 머리통은 일반인들이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돌대가리였다. 수혜가 자하심공의 구결을 풀어서 아군에게 아무래 설명해 주어도 아군은 단 한 줄의 구결도 이해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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